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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11-08
낡은 활자 속 유영하는 책의 심장 더듬는 골목
낡은 활자 속 유영하는 책의 심장 더듬는 골목
오래된 책이 있는 보수동책방골목
버려진 책들이 시간을 견디고 간절함 너울거리는 책의 퇴적층

보수동책방골목은 간절함의 공간이다. 낡고 버려진 책과 오래 가게를 지켜온 사람들이 무심하게 시간을 견디는 공간이다. 골목의 주인은 책, 200여 m 남짓한 짧은 골목에는 작은 책방들이 어깨를 붙이고 오종종 소박하게 줄지어 있다. 우리서점, 단골서점, 동화서점, 학사서점, 낭독서점 시집. 골목 양옆으로 줄지어 선 서점은 30여 곳. 오래된 골목에 들어선 작은 책방은 시골아이들처럼 부끄럽고 소박하다. 이곳의 책과 책방주인은 그 소박함으로 간절함을 애써 숨긴다. 매캐한 책먼지로 풍화된다. 서점에는 누군가가 읽고 내다버린 책들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그득하게 쌓여있다. 책들은 소박함으로 무심하게 세월을 인내한다. 그러나 그 간절함에는 극악스러움이 없어서 순순하고 무심하다. 오래된 가게를 지키고 있는 책방 주인과 오래된 책들,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 좁은 골목을 헤매고 다니는 책의 순례자들이 좁은 골목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쓰러질듯 바닥에서 천장까지 쌓여있는 낡은 책들은 서로가 서로의 어깨를 붙잡으며 중력을 견디고 있다. 시간이 거미줄처럼 켜켜이 쌓여 매캐한 책먼지로 날리는 곳에는 지상에서 사라진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한 발걸음들이 흘러 들어온다. 귀퉁이가 찢어지고 낡고 바랜 책의 표지에는 책방 골목의 역사만큼 오랜 시간이 새겨져 있다. 저 책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무심함 너머에는 간절함이 가을 햇살에 흩어지는 먼지처럼 가볍게 유영한다.

국제시장 입구 대청로사거리 건너편에서 보수동 쪽으로 나 있는 좁은 골목길에 책방들이 밀집되어 있다. 보수동책방골목이다. 6·25전쟁으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이북에서 피란 온 손정린 씨 부부가 보수동사거리 입구 골목안 목조건물 처마 밑에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헌책으로 노점을 열었다. 보수동책방골목의 시작이었다. 당시 많은 피란민들은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고, 부산소재 학교는 물론 피란 온 학교까지 구덕산 자락의 보수동 뒷산에서 노천교실·천막교실 등을 열어 수업을 했다. 학교로 가는 길목에 있던 보수동 골목길은 수많은 학생들의 통학로로 붐볐다. 헌책 노점이 자리 잡은 후 다른 피란민들이 가세해 노점과 가건물에 하나둘 책방을 열었다.

보수동책방골목은 전쟁과 가난이라는 현대사의 상처 위에서 피어났다. 상처는 켜켜이 쌓이고, 굳어, 아물었지만 골목을 지키는 시멘트 담벼락에 핀 들풀의 애잔함으로 간절하게 남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밀려 예전의 영화를 잃었지만 그래도 이곳에는 책이 있다. 누런 종이에 가지런하게 도열한 검은 활자의 격절감으로 사람들의 DNA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옛 영화는 사라졌지만 오래 된 서가 한 구석에 혹은 켜켜이 쌓인 책의 탑의 한 모퉁이에서 책은 여전하다. 낡은 표지 위로 시간은 흐르고, 쌓인다.

1986년 문을 연 동화서점 허양군(59) 대표는 책방골목에서 세상 보는 눈을 틔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사람은 책을 버리지만, 또 어떤 사람은 폐품처럼 버려진 무더기 안에서도 쓸모있고 귀한 책을 건져 올리고 있어요. 버리고, 새롭게 얻는 순환이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곳이 보수동책방골목이지요.

책의 퇴적층 위로 가을 햇살이 영글게 스민다. 맑은 햇살이 책을 위로하고, 책은 묵묵하게 시간을 견딘다. 견디며 깊게 여위어간다. 책이 울고 웃고 노래한다. 책의 노래는 매캐한 책먼지로 부유하고, 명멸한다. 책이 있는 오래된 골목을 걷고, 읽고, 반한다.

+부산 중구 책방골목길 8

<자료출처 : 함께 나누고 싶은 부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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