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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8-02-07
40계단·인쇄골목·백산기념관·또따또가 타박타박 걸으며 만나는 부산 근대역사
40계단·인쇄골목·백산기념관·또따또가 타박타박 걸으며 만나는 부산 근대역사
부산은 대표적인 근대도시이다.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타의에 의해 근대도시의 틀이 조성됐던 것. 항만·철도 등 도시기반시설과 근대 개념의 금융·체신·교통체계 등을 비롯해 근대도시를 규정짓는 근대건축물들이 조선 식민화 과정 속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특히 원도심으로 불리는 부산 중구 일대는 당시 조성됐던 도로와 몇몇 건축물, 사회기반시설이 아직 남아 있어 그 시절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에겐 굴욕적인 역사의 단편이지만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역사이기에 교훈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부산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는 명소들을 구·군별로 발품을 팔아 알아보는 걸어서 만나는 부산 역사 그 첫 번째 편으로 중구의 근대역사길을 걸어본다. 중앙동 40계단을 시작으로 원도심예술창작공간 또따또가-백년어서원-화국반점-백산기념관-청자빌딩-일제방공호-관수가 계단-고갈비골목-부산 최초 아파트인 청풍장·소화장 아파트까지. 그 시절의 역사를 천천히 따라 가본다.

피란시절 애환 어린 40계단

중앙동 40계단 일대에는 젖먹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여인과 뻥튀기 장수 아저씨,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지게꾼, 양동이와 물독을 이고 지고 물을 길어 나르는 어린 여자 아이들 등 6·25전쟁 당시 애환 어린 피란민들의 삶을 조형물로 설치해 놓았다. 40계단 문화관광 테마거리의 기념 조형물이 그들이다. 특히 40계단 중간에 아코디언을 켜고 있는 연주자는 대표적인 조형물로 기계를 조작하면 그 시절을 상징하는 가요가 흘러나온다. 40계단은 피란시절 노동의 공간과 휴식의 공간이 서로 만나던 경계지역이었다. 당시 피란민들은 40계단 위쪽으로 천막집, 판잣집들을 얼기설기 만들어 임시거처로 삼았는데, 40계단을 통로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불안한 잠자리와 곤고한 노동의 일상을 반복했던 것. 계단 아래로는 팍팍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품팔이, 껌 장사, 부두 하역 등을 하던 노동의 장소였다면, 계단 위로는 잠시나마 발을 뻗고 눈을 붙이던 휴식의 장소였던 셈이다. 때문에 피란민들은 40계단을 힘든 하루의 일상에서 잠시 쉬어가는 장소로 이용했다. 40계단에 앉아 가족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짓기도 하고, 헤어진 가족들과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40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란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잣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 없이 슬피 우는 이북고향/ 언제 가려나~ (박재홍의 가요 경상도 아가씨 중) 원래의 40계단은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 때 소실돼 25여m 남쪽으로 옮긴 지금의 장소에 새로운 40계단을 조성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을 배경으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을 촬영해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원도심 예술창작공간 또따또가

현재 40계단 주변으로는 원도심 예술창작공간인 또따또가 소속의 예술인과 그들의 창작공간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또따또가는 2010년부터 중앙동을 중심으로 비어있던 원도심의 18개 건물에 젊은 문화예술인 360여명, 22개의 예술문화단체가 터를 잡아 입주하면서 조성된 문화예술 공간이다. 당시 중앙동 일대는 원도심 공동화 현상의 심화로, 곳곳이 빈 건물로 남아있던 시기. 주요 관공서와 언론사, 기업들이 이전해 가고 난 후, 이곳의 빈 건물들을 임대해 젊은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지금의 젊은 예술문화가 꽃피는 지역이 됐다. 대표적인 공간으로 인문학 공간인 백년어서원과 문화공간 수이재, 영화 관련 공간인 모퉁이극장, 또따또가 갤러리 등이 있다. 특히 백년어서원은 부산의 대표적인 인문학 강좌 및 평생학습 공간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40계단을 오르면 동광동 인쇄골목이 나온다. 동광동 인쇄골목은 한때 원도심에 집중돼 있던 관공서와 기업들의 인쇄물을 소화하기 위해 인쇄출판 관련 업종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형성한 골목이다. 그러다보니 1980년대 전후로는 다양한 문화관련 산업 또한 이곳으로 몰려 부산문화 르네상스였던 중앙동시대가 활짝 열리기도 했었다. 부산시인협회등 예술단체와 지평, 전망 등 부정기간행물과 시와 사상, 오늘의 문예비평, 신생 등 유수의 부산문예잡지 등이 창간됐고, 빛남, 전망, 해성, 작가마을, 말씀, 푸른별 등의 출판사가 활발한 출판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은 다수의 인쇄관련업체가 서면 등지로 이전을 한 상태이지만, 아직도 이곳을 지키고 있는 많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업을 이어가고 있다. 인쇄골목에서 대청로를 건너면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상점이 있던 백산길이 나온다. 백산길 초입에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중국음식 전문점인 화국반점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 신세계에서 <부라더는 그냥 딱 이 형님만 믿으면 되야~> 라며 황정민이 이정재에게 술잔을 건네던 장소이기도 하다. 한때 많은 문화예술인들과 문화단체들의 회합장소로도 애용됐는데, 요산 김정한 선생을 중심으로 부산지역의 민족문학 단체의 전신이었던 5·7문학이 이곳에서 결성됐고, 김규태 시인 등 최계락문학상재단 관계자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부산문학 발전을 위해 회합을 가지곤 했다.

백산길 초입에서 만나는 근·현대 부산 역사

화국반점에서 조금 들어가면 백산기념관이 보인다. 백산 안희제 선생이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운영했던 백산상회 일원으로 선생의 생애를 알 수 있는 전시공간과 그 뜻을 기리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하는 장소이다. 그 옆으로는 청자빌딩이 자리하고 있다. 1918년 세워진 부산 최초의 금융기관 건물로 옛 한성은행 부산지점이 입주해 있었던 곳이다. 한때 또따또가 내 몇몇 창작공간이 입주해 있었는데, 최근에는 근대건축물을 보존하자는 여론에 힘입어 부산시가 매입, 생활문화센터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동광동 아로마호텔 축대에는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조성한 방공호가 있다. 반원 형태를 가진 동굴 형태로 높이는 2m, 폭은 1.5m쯤 된다. 입구에서 10m가량 들어가면 T자 모양으로 동굴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 중구에는 이러한 방공호 개념의 동굴이 용두산공원을 중심으로 6곳이 있으며, 부산 전체에도 문현동·용호동·가덕도 일원 등지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방공호는 일제가 태평양전쟁 등을 대비해 조성한 것으로,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시대의 역사유산으로 개발, 관광자원화를 계획하고 있기도 하다. 방공호를 지나면 오래된 돌계단이 나온다. 관수가 계단으로 관수가를 오르내리던 계단이다. 현재 남아있는 부산 초량왜관 시절의 거의 유일한 유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계단 오른쪽으로는 관수가가 소재해 있었다. 관수가는 초량왜관 시절, 왜관의 업무를 총괄하고 왜관으로 드나들던 왜인들을 관리 감독하던 관수의 사택. 이후 일제강점기 전후로 부산부청, 부산경찰서 등이 주변으로 들어서기도 했다.

고갈비골목과 부산 최초 아파트 소화장·청풍장

광복동 시티스폿 인근의 ABC마트(옛 미화당 백화점) 뒤편 골목에는 한때 부산을 대표했던 젊은이들의 먹거리 고갈비를 팔던 고갈비골목이 있었다. 고갈비란 고등어를 반으로 갈라 등뼈가 보이게 펼쳐서 석쇠나 번철에 노릇노릇 구워 팔던 음식이다. 인근의 공동어시장에서 구입한 싼 값의 고등어를 젊은이들의 술안주로 내놓게 되는데, 가격이 저렴한데다 양이 많아 주린 배를 채우기에도 좋아 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에는 할매집, 남마담, 맘보집, 고바우 등 12곳이 성업했다. 골목을 들어서면 늘 고등어 굽는 냄새와 매캐한 연기가 자욱했던 추억의 골목이다. 지금은 할매집과 남마담 2곳만이 남아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고 있다. 고갈비골목에서 남포동 영화의 거리로 들어선다. CGV 남포점 뒷골목, 이곳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아파트 2동이 세월의 더께를 잔뜩 이고 서 있다. 1941년 일본인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한 동은 소화장 아파트, 또 한 동은 청풍장 아파트다. 모두 4층 건물로 건물 입구가 3개며, 각각의 집 현관문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구조이다. 이 중 소화장 아파트는 부산이 임시수도 시절 국회의원 관사로 사용됐던 역사적 건축물이다. 국회가 부산으로 피난 오면서부터 1953년 9월 환도하기까지 이용됐다. 궁형 형태의 복도는 아직도 미려한 맛이 남아 있다. 당시의 르네상스식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이 두 아파트는 부산 최초 아파트라는 근대건축물로서의 존재성과 현대사의 소용돌이를 겪어온 역사문화유산 자료이기도 해 보존 논의가 시급하고 절실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이 중 소화장 아파트는 부산이 임시수도 시절 국회의원 관사로 사용됐던 역사적 건축물이다. 국회가 부산으로 피난 오면서부터 1953년 9월 환도하기까지 이용됐다. 궁형 형태의 복도는 아직도 미려한 맛이 남아 있다. 당시의 르네상스식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이 두 아파트는 부산 최초 아파트라는 근대건축물로서의 존재성과 현대사의 소용돌이를 겪어온 역사문화유산 자료이기도 해 보존 논의가 시급하고 절실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자료출처 : 함께 나누고 싶은 부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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